동학민란 당시 일본군의 조선 정탐 보고서
동학민란 당시 일본군의 조선 정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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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朝鮮內亂始末(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 24~25권) > 擾亂彙報
擾亂彙報
○擾亂彙報
○全州城中一兵なし 全州監營の東軍の有に歸したるは五月
三十一日のことなるが當日午後に至りては同營內にては一介
の兵士を留めさるのみならず給仕等の小童に至るまで影を止
めずして逃亡したりといふ
○招討使と監營 全州陷落の後招討使竝に完伯の行衛不分明
なりじか多分完伯は逃亡し洪招討使は戰沒せしなるべしとい
ふ
○國王の逆鱗 官兵の敗報頻りに到るも廷臣等は祕して之を
國王に奏せざりしが今回全州の陷りしとき始めて之を國王に
之を▣▣せられたりといふ
○支那米の輸入 淸國政府が國禁物たる米糧を無稅にて朝鮮
に輸出することを特許したりしが右は去る三日にて期限滿期
となりしが其以前にありて上海より輸入せし數額は日本郵船
會社の賴朝丸のみに搭載せしもの凡そ一萬袋あり尙此外獨逸
滊船及那原滊船等にても孰れも滿載して入港せし由なり
○韓廷の內情 新兵來援のこと專ら憫泳駿の斡旋に由り異▣
者多し殊に淸兵と前後して日兵の來警を見るに至りたるは全
く淸國の兵員の來援を求めたる結果なりとて韓廷內に種種異
論ある由なり尙韓人は平素口にするところは日人何かあらん
と傲慢の擧動ありしことありしが今現在に日艦の舳艦相▣て
仁川に繫泊するを見その上勇武なる日本兵士の京城に入るも
將さに近きにあるべしと喧傳じ俄に畏怖の色あるは笑止千萬
なりといふ其上今回暴徒の强猛逞して官軍屢ば破れ追討軍も
亦た功を奏すること能はず擧朝非常の狼狽をなしつゝありた
るは事實なるが之れをしも掩はんとして種種の言葉を設け各
國の公使等に對しては東徒の魁首は旣に戮につけりとか或は
京軍大勝利なりとかしきりに强がり風を吹かし居たりといふ
是れ日淸兩國の兵士の入京するを恐れ之を遮ぎるの策に出し
ものなるべしといふ
○巡邊使李元會氏 全州陷落の報に接し之が鎭定の重任を負
て本月二日の夜を以て發程し京軍一千餘砲兵百六十人を率ひ
戰地にむかひたる李元會は曾て漢城の利軍たりし人にして韓
人中には頗る活潑なる且つ勇氣ある人物の由本年七十の高齡
なりと钁鑠たるかな此翁や往て須らく不朽の大功を立つべし
▣▣▣▣▣▣▣▣▣▣▣▣▣に包まんのみ又人生の 大快事
餘命何ぞ惜しむに足らんや
○亡國の逆臣 口に忠君愛國を唱ふるも心中一點の盡忠の赤
誠なく表に良臣賢才の容ちを裝ふも裏に報國一片の丹心なし
宜なり一朝事起るの日に逢ふて狼狽遁逃するや韓庭の諸官這
回の敗報に接し恐怖一方ならず除除逃げじたくをなし中には
祕密の懸に家財を鄕里等に運搬せしむるもの多しといふ君の
祿を食むの廷臣にして其君を思はず只に自己の安全をのみ圖
る如何に朝鮮末路の然らしむるところとは雖も之れをしも何
とか評せんや獅子身中の蟲とは彼等のことをや云ふべきか
○本覓山の烽火 木覓山は京城の南山なり此邊より東の方は
樹木鬱然溪澗には淸海ありて其風趣の雅致ある騷客韻士は時
時杖を引くの地なりといふ山嶺は衆峯に抽んでゝ高く頂上に
は五個の炮火臺ありて國內八道の炮線は此に會するなりすべ
て朝鮮にてては事變の起ることあれば此を報するには必ず炮
火を以てすることなるが燈臺の設け全八道に凡そ三百六十五
ケ所間烽の數二百八十餘所あり燈火は夜間一點の火あれば無
事の報とし二點あれば異變ありとしまた白晝には薪柴等を燒
き昇烟を以て相圖となすの法なりといふ果して此の木覓山の
燈臺二點の烟火天に沖するのときを見ることなくんば韓國の
幸なり
○國王の避難地 朝鮮國にては一旦非常の事あるとき國王の
避難地として定められたるものあり從前は江華島も其の一一
處なりしが今は營兵なきを以て萬一東學黨など京城に侵入す
るが如きことあらば國王は先つ宮闕の後方に位せる北漢山の
山城に入らるべし同山城は樹木を伐り拂ひ巖石を削り周圍一
▣▣▣▣▣▣▣▣を築き用水を後山の谿間に取り恰も摺鉢を
倒まにし其の上面を穿ちて家屋を建設したるが如く一見砲臺
に髣髴たる城塞なれば後糧彈藥にして充分に備はりたらんに
は一夫之を守れば萬卒も動かし難き要害の地にして容易に侵
入するを得ずといふ
○韓廷の瀰縫 韓庭か虛勢を示めして一は官軍の勇を裝ひ一
は諸外國に對してその威を落さんことを恐れ左の如き意味を
書したる貼紙を京城の四門に貼布せりといふ韓庭の苦心察す
るにあまりあり
去る二十二日招討沁營の兩軍咸平の賊徒を襲ひ二十餘名を殺
戮し尙は逃るを追て遂に崔鄭の兩巨魁を生擒す賊軍震怖
夜遁逃するものあり全州の妖雲不日にして鎭定に歸せん
이 문헌은 "甲午朝鮮內亂始末"의 일부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역사적 사료입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 24~25권 > 소란 집계 보고
소란 집계 보고
○ 소란 집계 보고
○ 전주성 내에 군사 없음. 전주 감영의 동군이 귀순한 것은 5월 31일의 일이나, 당일 오후에 이르러서는 동 감영 내에서 군사 한 명을 남겨둔 것이 아니라, 하인들과 소년들까지도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도망쳤다고 함.
○ 초빙사(招討使)와 감영. 전주 함락 후 초빙사와 완백(完伯)의 행위가 불분명함. 대부분 완백은 도망쳤고 홍초빙사는 전사했을 것이라고 함.
○ 국왕의 역린. 관병의 패전 소식이 자주 도착했으나, 궁정 대신들은 이를 국왕에게 보고하지 않았음. 이번 전주 함락 때 처음으로 국왕에게 보고됨.
○ 청나라 쌀의 수입. 청나라 정부가 국가금지 품목인 쌀을 무세금으로 조선에 수출할 것을 특허함. 이는 지난 3일에 기한 만료됨. 그 전에 상하이에서 수입된 쌀의 양은 일본 우편선 회사의 라이조마루에만 실린 것이 약 1만 포대이며, 독일 및 나하라 독선 등에서도 만재하여 입항함.
○ 한정(韓廷)의 내정. 신병의 지원에 관해서는 주로 민영준의 중재로 이루어짐. 특히 청군과 일본군의 경고를 보고나서 청군의 지원을 요청한 결과라고 함. 한정 내에는 다양한 이견이 있음. 또한 한국인들은 평소에 일본인들을 얕잡아보며 오만한 행동을 했었는데, 지금 일본군함이 인천에 정박하고, 용감한 일본 병사들이 경성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두려움의 표정이 변함. 이것은 매우 웃긴 일임. 그 위에 이번 폭도들의 강력한 행동으로 인해 관군은 여러 번 패배하고, 추격군도 성공을 거두지 못함. 온 궁정이 큰 혼란을 겪고 있음. 이를 숨기려고 여러 가지 말을 만들어내어 각국 공사들에게는 동도의 주모자가 이미 처형되었다거나, 경군이 대승리를 거뒀다는 등의 강한 말을 내뱉고 있음. 이것은 일본과 청국의 병사들이 경성에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막으려는 전략일 것임.
○ 순변사 이원회 씨. 전주 함
Use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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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소식을 접하고 그 평정의 중임을 맡아 2일 밤에 출발함. 경군 1,000여명과 포병 160명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함. 이원회는 한성의 유력한 군인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상당히 활발하고 용기 있는 인물로 알려짐. 올해 7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 노인이 가서 반드시 불멸의 대공을 세울 것임.
○ 망국의 역신. 입으로는 충신과 애국을 외치면서도 마음속에는 충성의 정성이 조금도 없음. 겉으로는 좋은 신하와 현명한 인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뒤에서는 국가를 위한 조금의 열정도 없음.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황하여 도망치는 것은 조선 궁정의 여러 관리들임. 이번 패전 소식에 직면하여 공포로 인해 뿔뿔이 도망쳐 집안을 정리함. 그 중에는 비밀리에 가산을 고향 등으로 운반하는 사람들도 많음. 군주의 봉록을 받는 궁정의 신하이면서 그 군주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함. 어떻게 조선 말기의 현실을 평가해야 할까? 궁중의 벌레들은 바로 이들을 지칭하는 것임.
○ 본맥산의 봉화. 본맥산은 경성의 남산임. 이쪽에서 동쪽으로는 나무가 울창하고 시냇물에는 맑은 바다가 있어 그 풍경이 아름다움. 시인과 문사들이 종종 지팡이를 짚고 산책하는 곳임. 산맥은 높게 솟아 있으며, 정상에는 다섯 개의 봉화대가 있어, 국내 여덟 도로의 봉선이 여기서 만남. 조선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봉화로 신호를 보냄. 봉화대는 전국 여덟 도에 총 365개소가 있으며, 봉화의 수는 280여 개소임. 밤에는 한 점의 불빛이 평화의 신호로, 두 점은 이변이 있음을 알림. 낮에는 장작 등을 태워 연기로 신호를 보냄. 본맥산의 봉화대에서 두 점의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볼 수 없으면 조선의 행운임.
○ 국왕의 피난처. 조선에서는 비상 사태가 발생할 때 국왕의 피난처로 정해진 곳이 있음. 과거에는 강화도가 그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군대가 없어 만일 동학당 등이 경성에 침입한다면 국왕은 북한산의 산성으로 들어갈 것임. 같은 산성은 나무를 베고 바위를 깎아 주변을 쌓고, 후산의 계곡에서 물을 끌어와 마치 절구를 뒤집어 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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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하게 그 위에 집을 짓고, 한눈에 보기에도 요새처럼 보임. 뒤에는 탄약과 식량을 충분히 준비해둠. 한 사람이 지키면 만 명의 군대도 움직이기 어려운 요충지로, 쉽게 침입할 수 없음.
○ 한정(韓廷)의 어려움. 한정은 허세를 부리며, 한편으로는 관군의 용맹을 과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외국에 대해 위세를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함. 이런 의미의 전단지를 경성의 네 개 문에 붙임. 한정의 고심이 엿보임.
지난 22일, 초빙진영의 양군이 함평의 적도를 습격하여 20여 명을 살해하고, 도망친 적을 추격하여 최정의 양대 괴수를 생포함. 적군은 공포에 질려 밤에 도망침. 전주의 요정이 곧 평정될 것임.]
이 문서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당시 조선의 정치적 혼란, 군사적 대응, 그리고 외국 세력과의 관계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서는 당시 조선의 내부 상황과 대외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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