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권 제1 > 제1 기이(紀異第一) > 김유신(金庾信 : 흥무대왕 김유신) > 백석白石 전
삼국유사 권 제1 > 제1 기이(紀異第一) > 김유신(金庾信 : 흥무대왕 김유신) > 백석白石 전
삼국유사 권 제1 > 제1 기이(紀異第一) > 김유신(金庾信) > 백석白石 전
(내가 AI로 그린 그림)
年至十八壬申修釰得術爲國屳. 時有白石者不知其所自來, 属於徒中有年. 郎以伐麗濟校勘 326之事日夜深謀. 白石知其謀告於郎曰, “僕請與公宻先探於彼然後圗之何如.” 郎喜親率白石夜出行. 方憩於峴上有二女随郎而行. 至骨火川留宿又有一女忽然而至. 公與三娘子喜話之時娘等以羙菓餽之. 郎受而啖之心諾相許乃說其情. 娘等告云 “公之所言已聞命矣, 願公謝白石而共入林中更陳情實.” 乃與俱入娘等便現神形曰, “我等奈林·穴禮·骨火䓁三所護國之神, 今敵國之人誘郎引之郎不知而進途, 我欲留郎而至此矣.” 言訖而隠. 公聞之驚仆再拜而出. 宿於骨火舘謂白石曰, “今歸他國忘其要文. 請與爾還家取來.” 遂與還至家拷縛白石而問其情. 曰 “我本高麗人, 古本云百濟誤矣. 楸南乃髙麗之士. 又逆行隂陽亦寳藏王事. 我國群臣曰 ‘新羅庾信是我國卜筮之士楸南也 古本作春南誤矣.’. 國界有逆流之水 或云雄雌尤反覆之事.使其卜之. 奏曰 ‘大王夫人逆行隂陽之道其瑞如此.’ 大王驚恠而王妃大怒謂是妭狐之語, 告於王 ‘更以他事験問之失言則加重刑.’ 乃以一鼠藏於合中問 ‘是何物.’ 其人奏曰 ‘是必鼠其命有八.’ 乃以謂失言将加斬罪, 其人誓曰 ‘吾死之後願爲大将必滅高麗矣.’ 即斬之剖鼠腹視之其命有七, 於是知前言有中. 其日夜大王夢楸南入于新羅舒玄公夫人之懷, 以告於羣臣皆曰, ‘楸南誓心而死是其果然.’ 故遣我至此謀之爾.” 公乃刑白石, 備百味祀三神皆現身受奠.
연관콘텐츠 사료로 보는 한국사>삼국 시대>토착신앙>삼산 숭배 신앙
校勘 326 서울대규장각본과 순암수택본에는 齊로 되어 있다.
주제분류정치>신이>생물>사람·귀신
정치>왕실>왕족>왕후·왕비
색인어이름 : 白石, 楸南, 寳藏王, 庾信, 春南, 舒玄
지명 : 骨火, 奈林, 穴禮
국명 : 高麗, 百濟, 髙麗
글자 크게글자 작게
나이가 18세가 되던 임신(壬申)년에 검술을 익혀 국선(國仙)註 636이 되었다. 이때 백석(白石)註 637이란 자가 있었는데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낭도의 무리에 여러 해 동안 속해 있었다. [유신]랑은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는 일로써 밤낮으로 깊이 모의하고 있었다. 백석이 그 모의를 알고 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가 공과 함께 은밀히 저들의 나라에 들어가 먼저 정탐을 한 연후에 그 일을 도모함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청하였다. [유신]랑이 기뻐하며 친히 백석을 데리고 밤에 길을 떠났다.
바야흐로 고개 위에서 쉬고 있는데 두 여자가 [유신]랑을 따라 왔다. 골화천(骨火川)에 이르러 유숙하는데 또 한 여자가 홀연히 나타나 이르렀다. [유신]랑이 세 여자와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노라니 세 여자가 맛있는 과일을 낭에게 대접하였다. [유신]랑이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마음을 서로 허락하고 즐겁게 담소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여인들이 말하기를 “공이 말씀하신 바는 이미 들어서 잘 알겠사오나, 원컨대 공이 백석을 떼어놓고 우리와 함께 수풀 속으로 들어가시면 그 때 사실을 다시 말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그들과 함께 들어가니 낭자들이 문득 신으로 변하여 말하였다. “우리들은 나림(奈林)註 638·혈례(穴禮)註 639·골화(骨火)註 640 등 세 곳의 호국신인데, 지금 적국의 사람이 [유신]랑을 유인하여 데리고 가는 데도 공은 알지 못하고 따라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말리려 이곳에 온 것입니다.” [신들은] 말을 마치고 나서 사라졌다. 공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엎어져 두 번 절하고 나왔다.
골화관(骨火館)에 숙박하였을 때 백석에게 말하기를 “지금 다른 나라에 가면서 긴요한 문서를 잊고 왔다. 청컨대 자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가지고 오자.” 하였다. 마침내 함께 돌아와 집에 이르자 백석을 붙잡아 결박하고 사실을 물었다. [백석이] 말하기를 “저는 본시 고구려 사람으로 고본(古本)에는 백제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추남註 641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또한 음양을 거스르는 것도 역시 보장왕(寶藏王)註 642의 일이다 우리나라[고구려]의 여러 신하들이 ‘신라의 유신은 바로 우리나라의 점쟁이[卜筮之士] 추남(楸南)이다.’라고 말합니다 고본에 춘남(春南)이라 쓰기도 하나 잘못이다. 나라의 경계에 거꾸로 흐르는 물이 있어서 혹은 숫컷과 암컷이 자주 바뀌는 일이라고도 한다 왕이 그에게 이에 대한 점을 치게 하였습니다. [추남이] 말하기를 ‘대왕의 부인께서 음양의 도를 역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징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대왕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으며 왕비도 몹시 노하여 이것은 필시 요사한 여우의 말이라고 하며 왕께 고하기를 ‘다른 일로써 그를 시험하여 말이 맞지 않으면 중형에 처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에 쥐 한 마리를 함에 담아 두고,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고 물었습니다. 추남이 나와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쥐인데 그 수가 여덟 마리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말이 틀린다 하여 죄를 씌워 죽이려 하니 추남이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대장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키리라.’ 하였습니다. 추남의 목을 베고 쥐의 배를 갈라 그 안을 보니 [새끼] 일곱 마리가 있어 그제야 그의 말이 적중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날 밤 대왕께서 추남이 신라 서현공(舒玄公)의 부인 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다 ‘추남이 맹세를 하고 죽더니 과연 그러합니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보내어 여기에 와서 유신공을 도모케 하였을 뿐입니다.” 하였다. 공이 곧 백석을 죽이고 온갖 음식을 갖추어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니 모두 다 몸을 나타내어 흠향하였다.
연관콘텐츠 사료로 보는 한국사>삼국 시대>토착신앙>삼산 숭배 신앙
註 636 ≪삼국유사≫에서 화랑을 일컫는 말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화랑과 비교하여, 화랑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이를 국선으로 불렀던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화랑과 국선을 같은 대상에 대한 이칭으로 보기도 한다(김상현, ≪신라의 사상과 문화≫, 1999, 일지사).
註 637 고구려에서 김유신을 해칠 목적으로 신라에 파견했던 첩자로, 김유신을 고구려로 유인하려다가 일이 발각되어 붙잡혀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다(≪삼국유사≫ 권1 기이1 김유신).
註 638 나력(奈歷)이라고도 하며 혈례(穴禮), 골화(骨火)와 함께 신라 산천제사 중 대사(大祀)의 제장이었다. 나림은 경주의 낭산(狼山) 또는 명활산(明活山)에 비정된다(최광식, ≪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註 639 나림(奈林, 나력), 골화(骨火)와 함께 신라 산천제사 중 대사(大祀)의 제장이었다. 혈례산은 경북 청도의 오리산, 경북 경주시 건천읍의 단석산, 경주시 안강읍 북부와 영일군 기계면 남부의 경계에 위치한 어래산 등에 비정된 바 있다(최광식, ≪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註 640 현재의 경북 영천시 임고면 일대의 신라 때 지명으로 본래 골화소국 혹은 골벌국이었다가 조분이사금 때 신라에 복속되어 현(군)이 되었다. 이곳에 있던 골화산은 신라 산천제사 중 대사(大祀)의 대상이었던 삼산(三山) 중 하나였다(최광식, ≪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註 641 춘남(春男)이라고도 하며, 고구려에서 점을 치던 사람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김유신조에는 추남이 점을 쳐서 고구려왕에게 아뢰었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신라에서 김유신으로 환생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註 642 고구려의 제28대 마지막 왕으로 재위 기간은 642~668년이다. ≪삼국사기≫ 권21 고구려본기9 보장왕 즉위년조에는 이름을 장(臧) 혹은 보장(寶臧)이라 하였다. 동왕 27년(668)에 고구려가 망하자 당으로 끌려갔다. 그 후 몰래 말갈과 통하였으므로 681년 공주(邛州)로 소환되어, 이듬해 그 곳에서 죽었으며 위위경(衛尉卿)에 추증되었다(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2004).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