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말한 노량해전_조선왕조 선조실록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말한 노량해전_조선왕조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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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09권, 선조 32년 2월 7일 정사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진 도독의 관사에 거둥하여 접견례를 행하다국역원문.원본 보기

상이 진 도독의 【진인(陳璘). 】 관사에 거둥하여 접견례를 행하였다. 【노량(露梁)의 전투에서 진격해오던 적이 물러가 마침내 전승하였으니 그 성공은 천운이었다. 】 진인이 말하기를,


"부산성(釜山城)은 성곽이 불완전하여 적을 막을 수 없으나 만약 20∼30만 냥의 은자(銀子)를 가지고 무기를 보완하고 용사를 모집한다면 적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와 순풍을 만나면 하루에 오갈 수 있어 적이 오는 길목이니 굳게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 이 나라를 이처럼 깊이 생각하시니 감격스럽습니다."


하고, 상이 윤돈(尹暾)에게 이르기를,


"부득이 부산성을 개축한다면 왜적의 옛 보루(堡壘)를 철거하고 쌓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그래야 합니다."


하였다. 도독이 말하기를,


"대마도는 토질이 척박하니 반드시 이 나라의 미곡을 필요로 할 것이고 게다가 고기를 잡기 위해 오가다가 평상시에 몰래 노략질할 우려가 없지 않으니 반드시 중국의 제도처럼 돌로 몇 층의 지대(地臺)를 단단하게 쌓고 그 위에 벽돌을 매끈하게 쌓아올려 침입해 오더라도 붙잡고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경(王京)은 바로 근본이 되는 지역인데 도성이 지나치게 크고 견고하지 않으니 반드시 군문(軍門)과 강정(講定)하여 개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 우리 나라의 근본을 위하시는 걱정이 이처럼 지극하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도성이 너무 크다는 것은 과인도 이미 알고 있으나 다만 형세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개축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좋은 방법을 지도해 주십시오."


하자, 진인이 말하기를,


"낮은 산성은 4∼5장(丈) 높이로 더 쌓고 그 안에 전곡(錢穀)과 무기를 많이 저장하여 절대로 우리를 침범할 수 없는 형세를 이루면 지대의 높고 낮음은 거론할 것도 없습니다. 적이 높은 곳에서 엿보더라도 스스로 지키는 방도에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하고, 진인이 또 말하기를,


"국왕께서는 일이 많으시고 나도 독부(督部) 아문에 가볼까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진인이 말하기를,


"남해(南海)에는 전부터 적의 식량이 많이 있어 전일 불탄 너머지도 3만여 곡(斛)이 있었으므로 지방관으로 하여금 수습하도록 하였습니다. 석만자(石曼子)와 행장이 처음에 오래 머물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곡식을 저장했던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의 신묘하신 계책을 힘입어 8년간의 강적이 하루아침에 섬멸되었으니 고마우신 은덕은 형용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자, 진인이 말하기를,


"한창 적이 포위해 올 때 내 배는 큰북을 치고 먼저 나아가고 등자룡(鄧子龍)과 이순신(李舜臣) 두 장수가 좌우에서 협공하였는데 그 두 장수는 다 적에게 죽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죽기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동요하지 않아 다행히 패배를 면하였으니 이 또한 운수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순천(順天)의 적은 그 수효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하니, 진인이 말하기를,


"적은 2만여 명이 넘었으나 살아서 돌아간 것은 겨우 십여 척입니다. 적이 믿는 것은 조총이었는데 나는 구총(九銃)으로 그들 배를 때려 부쉈기 때문에 흉적이 당해 내지 못하여 패한 것입니다. 때마침 바람이 없어 추격하지 못한 것이 나는 아직도 유감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는 다 대인의 공덕입니다."


하였다. 진인이 하직하려고 하니 상이 예단을 주자, 진인이 정성인 줄 알고 받겠다고 말하고 나갈 임시에 말하기를,


"내가 말한 성을 쌓는 한 가지 일은 무엇보다 긴급하니 국왕은 유념하십시오. 중국이 이미 나라를 구제하였고 끝까지 도와주려고 하니 이 뜻을 군문에게 전달하여 빨리 조치하셔야 합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8책 10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72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외교-명(明)

○丁巳/上幸陳都督 【璘。】 館, 行接見禮。 【露梁之戰, 來賊退遁, 竟收全捷, 成功則天也。】 璘曰: "釜山城體不完, 不可禦賊。 若得二三十萬銀子, 繕完其器械, 招集其壯勇, 則賊不怕矣。 此地與對馬島相近, 便風可以一日往來, 乃賊路之要衝也。 不可不堅守。" 上曰: "大人軫念小國至此, 感激。" 上謂尹暾曰: "釜城若不得已改築, 則撤得倭賊舊壘, 以築何如?" 暾曰: "然矣。" 都督曰: "對馬土薄, 倭賊必求此國米穀, 且因漁採往來, 不無尋常竊發之患。 必倣天朝之制, 以石堅築地臺數層, 以甓築于其上, 使蕩蕩, 寇來不得攀緣而上則好矣。 且王京, 乃根本之地, 都城過大而不堅。 必與軍門講定, 改築可也。" 上曰: "大人爲小邦根本之憂, 若是其至, 多謝多謝。 都城過大, 不穀亦已知之, 但形勢如此, 未知如何改築。 願大人指敎善法。" 璘曰: "庳山更築, 高可四五丈, 許多實錢糧器械於其內, 使我有截然不可犯之勢, 則地之高下, 不須論也。 賊雖從高窺望, 何害自守之道哉?" 璘曰: "國王多事, 俺亦欲往督部衙門。" 上曰: "當依命。" 璘曰: "南海素多賊糧, 前於煨燼之餘, 尙有三萬餘斛, 已令地方官收拾矣。 石曼子與行長, 初有久駐之計, 此穀所以儲也。" 上曰: "賴大人神算, 八年勍賊, 一朝就滅, 舍恩感德, 不知所喩。" 璘曰: "方賊圍把時, 俺船懸鼓先登, 鄧子龍、李舜臣二將, 左右挾攻。 二將皆爲賊所斃, 而俺冒死直前, 不動聲色, 幸免其敗, 此亦數也。" 上曰: "順天之賊, 其數幾何?" 璘曰: "賊可二萬有餘, 而生還者僅十數隻。 賊之所恃者鳥銃, 而我以九銃, 撞破其船, 故兇賊不得抵當, 所以敗也。 適以無風, 未得追擊, 俺尙有遺恨。" 上曰: "此皆大人之德也。" 璘欲辭, 上呈禮單, 璘曰: "領誠。" 將出曰: "俺所言築城一事, 最爲切急, 王須體念。 天朝旣已拯濟, 欲終始其惠, 可以此意, 轉告軍門, 速爲料理。"


【태백산사고본】 68책 10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72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외교-명(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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