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모용외 재기 01

 진서

 晉書

 108권 재기 8

 卷一百八 載記第八

 모용외

 慕容?




 모용외의 자는 혁락괴이고, 창려 극성의 선비인이다.

 慕容?,字?洛?,昌黎棘城鮮卑人也。


 그 선대는 유웅씨의 후예로, 대대로 북이에 거주하다 자몽의 들에서 읍락을 이루고 동호라고 불렸다.

 其先有熊氏之苗裔,世居北夷,邑于紫蒙之野,號曰東胡。


 그 뒤 흉노와 더불어 나란히 번성하여 활 당기는 군사가 20여 만이었고, 풍속과 관호는 흉노와 대략 같았다.

 其後與匈奴?盛,控弦之士二十余萬,風俗官號與匈奴略同。


 진나라와 한나라 때에 흉노에게 패한 바 되어, 나뉘어 선비산에서 보전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불리게 되었다.

 秦漢之際?匈奴所敗,分保鮮卑山,因以?號。


 증조 막호발은 위나라 초 그 여러 부락을 이끌고 요서에 들어가 거주하였고, 선제를 따라 공손씨를 정벌하여 공이 있었으니, 솔의왕으로 임명되고 비로소 극성의 북쪽에 나라를 세웠다.

 曾祖莫護跋,魏初率其諸部入居遼西,從宣帝伐公孫氏有功,拜率義王,始建國於棘城之北。


 이때 연과 대에서는 보요관을 많이 썼는데, 막호발이 보고는 좋아하여 머리를 거두어 묶고 이 관을 따라서 쓰고 다니니 여러 부락이 말이암아 보요라고 불렀고, 그 뒤 음이 와전되어 마침내 모용이 되었던 것이다.

 時燕代多冠步搖冠,莫護跋見而好之,乃斂發襲冠,諸部因呼之?步搖,其後音訛,遂?慕容焉。


 혹 이르길 하늘과 땅의 덕을 흠모하고 해와 달과 별의 용모를 이어받았다 하여  마침내 모용을 씨로 삼았다고 한다.

 或雲慕二儀之德,繼三光之容,遂以慕容?氏。


 조부는 목연으로 좌현왕이다.

 祖木延,左賢王。


 아비는 섭귀로 유성을 보전한 공으로 선비선우로 관직이 올라갔고, 요동의 북쪽으로 읍락을 옮기니, 이에 점차 제하의 풍속을 그리워하였다.

 父涉歸,以全柳城之功,進拜鮮卑單于,遷邑於遼東北,於是漸慕諸夏之風矣。



 외는 어려서 우람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신장이 8척으로 둥걸하며 큰 도량이 있었다.

 ?幼而魁岸,美姿貌,身長八尺,雄傑有大度。


 안북장군 장화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는데, 외가 어릴 때 찾아가 알현하자 장화가 깊이 찬탄하며 일러 가로되 "군은 장성하여 반드시 세상을 구할 그릇이 되어, 난세를 바로잡아 시대를 구제할 것이오."

 安北將軍張華雅有知人之鑒,?童冠時往謁之,華甚歎異,謂曰:「君至長必?命世之器,匡難濟時者也。」


 말이암아 쓰고 있던 비녀와 관모를 외에게 주고, 은근히 맺고는 헤어졌다.

 因以所服簪?遺?,結殷勤而別。


 섭귀가 죽자 그 동생 내가 자리를 찬탈하여 장차 외를 죽이고자 꾀하니, 외가 달아나 숨어서 화를 피했다.

 涉歸死,其弟耐?位,將謀殺?,?亡潛以避禍。


 뒤에 나랏사람이 내를 죽이고 외를 맞이하여 세웠다.

 後國人殺耐,迎?立之。



 처음 섭귀가 우문선비와 원한이 있었으므로, 외가 장차 선군의 원한을 씻고자 표문을 올려 토벌하기를 청하였다.

 初,涉歸有憾于宇文鮮卑,?將修先君之怨,表請討之。


 무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武帝弗許。


 외가 분노하여, 요서에 침구해 들어와서는 죽이고 약탈한 것이 매우 심했다.

 ?怒,入寇遼西,殺略甚?。


 제가 유주의 뭇 군사를 보내어 외를 토벌하니, 비여에서 싸워서 외의 군대가 대패하였다.

 帝遣幽州諸軍討?,戰於肥如,??大敗。


 이후로부터 거듭 창려를 노략질하여 매해 끊이질 않았다.

 自後複掠昌黎,每歲不?。


 또 군대를 이끌고 동으로 부여를 정벌하니, 부여왕 의려가 자살하고 외는 그 국성을 무너뜨려 만여 인을 잡아 돌아왔다.

 又率?東伐扶余,扶余王依慮自殺,?夷其國城,驅萬餘人而歸。


 동이교위 하감이 독군 가침을 보내어 장차 의려의 아들을 맞이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니, 외가 그 장수 손정을 보내어 기병을 이끌고 요격하게 하였다.

 東夷校尉何龕遣督護賈沈將迎立依慮之子?王,?遣其將孫丁率騎邀之。


 침이 힘껏 싸워서 손정을 베고, 마침내 부여의 나라를 회복시켰다.

 沈力戰斬丁,遂複扶余之國。


 외가 그 무리와 꾀하여 가로되 "나는 선공 이래 대대로 중국을 받들었고, 또 화족과는 다스림이 다르고 강약이 실로 차이나니, 어찌 능히 진나라와 더불어 다투겠느냐? 어찌 불화하여 내 백성들이 해되게 하겠느냐!"

 ?謀於其?曰:「吾先公以來世奉中國,且華裔理殊,?弱固別,豈能與晉競乎?何?不和以害吾百姓邪!」


 이에 사신을 보내어 항복해 왔다.

 乃遣使來降。


 제가 기뻐하고, 선비도독으로 임명하였다.

 帝嘉之,拜?鮮卑都督。


 외가 동이부에 치경하며 두건과 의복 차림으로 문에 이르러 사대부의 예를 행하였다.

 ?致敬於東夷府,巾衣詣門,抗士大夫之禮。


 하감이 군대를 엄비한 채 인견하자, 외가 이에 의복을 융의로 고쳐 입고 들어왔다.

 何龕嚴兵引見,?乃改服戎衣而入。


 남이 그 까닭을 묻자 외가 가로되 "주인이 예의를 갖추지 않는데, 손님이 또한 어찌하겠소!"

 人問其故,?曰:「主人不以禮,賓複何?哉!」


 감이 듣고는 부끄러워하며 더욱 경탄하였다.

 龕聞而?之,彌加敬憚。


 이때 동호의 우문과 선비의 단부가 외의 위덕이 나날이 빛나므로, 병탄하려는 계획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말미암아 침구하여 노략질하고 왕래하길 그치지 않았다.

 時東胡宇文鮮卑段部以?威德日廣,懼有??之計,因?寇掠,往來不?。


 외가 겸손한 말과 후한 폐물로 달래었다.

 ?卑辭厚幣以撫之。



 태강 10년, 외가 또 도하의 청산으로 옮겼다.

 太康十年,?又遷於徒河之?山。


 외가 대극성이 곧 제 전욱의 터이므로, 원강 4년에 이에 이주하였다.

 ?以大棘城?帝?頊之墟也,元康四年乃移居之。


 농업과 양잠을 가르치고, 법제를 상국과 같게 하였다.

 ?以農桑,法制同于上國。


 영녕 중에 연에 큰물이 지자, 창고를 열어 진휼하니 유주가 구제되었다.

 永?中,燕垂大水,?開倉振給,幽方獲濟。


 천자가 듣고는 기뻐하여, 관복을 포상하였다.

 天子聞而嘉之,褒賜命服。



 태안 초에 우문막규가 동생 굴운을 보내어 변성을 침구하고, 운의 별수 대소연이 뭇 부락을 공략하자, 외가 몸소 쳐서 깨뜨렸다.

 太安初,宇文莫圭遣弟屈雲寇邊城,雲別帥大素延攻掠諸部,?親擊敗之。


 소연이 분노하여 군대 10만을 거느리고 극성을 포위하니, 무리가 모두 두려워하여 사람들이 맞서려는 뜻이 없었다.

 素延怒,率?十萬圍棘城,?鹹懼,人無距志。


 외가 가로되 "소연은 비록 개와 양, 개미떼 같지만, 그 군대는 법제가 없고 이미 내 계책 가운데 있도다. 제군들은 다만 힘껏 싸우면 되니, 근심할 바 없다."

 ?曰:「素延雖犬羊蟻聚,然軍無法制,已在吾計中矣。諸君但?力戰,無所憂也。」


 이에 몸소 갑주를 입고 말달려 나아가 치니 소연이 대패하고, 백리를 달아나고 뒤쫓아서 만여 인을 잡고 베었다.

 乃躬貫甲胄,馳出擊之,素延大敗,追奔百里,?斬萬餘人。



 영가 초, 외는 선비대선우로 자칭하였다.

 永嘉初,?自稱鮮卑大單于。


 요동태수 방본이 사사로운 원한으로 동이교위 이진을 죽이자, 변방 근처의 선비족 소련과 목진 등이 진의 원수를 갚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로 말미암아 난을 일으키고자 하여 마침내 뭇 현을 공함하고 사족과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였다. 

 遼東太守龐本以私憾殺東夷校尉李臻,附塞鮮卑素連、木津等托?臻報仇,實欲因而?亂,遂攻陷諸縣,殺掠士庶。


 태수 원겸이 자주 싸웠으나 이롭지 못하니, 교위 봉석이 두려워하여 화친을 청하였다.

 太守袁謙頻戰失利,校尉封釋懼而請和。


 련이 해마다 침구하여 약탈하니, 백성이 직업을 잃고 떠돌다 귀부하는 자가 날마다 이어졌다.

 連歲寇掠,百姓失業,流亡歸附者日月相繼。


 외의 아들 한이 외에게 말하여 가로되 "제후를 구하는 것이 왕을 도움만 같지 못하니, 자고로 임금이 된 자가 있어도 이에 의지하지 않고 대업을 이룬 자는 없습니다. 지금 련과 진이 발호하여 관군이 무너져 패하고 창생이 떠돌아다니니 어찌 이토록 심합니까! 더벅머리 아이가 밖으로는 방본을 명분으로 하지만, 안으로는 실제로 침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봉사군이 본을 주살하고 화친을 청하였으나 그 해독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요동이 기울어 무너진 지 2년 가까이 이르렀으니, 중원의 병란으로 주의 군사가 자주 패하니, 왕을 돕고 의에 기대려면 지금이 그 때입니다. 선우께서는 의당 아홉가지 벌하는 위엄을 밝히고 절박한 목숨을 구하여, 련과 진의 죄를 헤아려 의병을 합쳐 주살하셔야 합니다. 위로는 요 땅을 다시 일으키고 아래로는 2부를 병탄하여, 충의는 본조에 드러나고 사리는 우리나라에 돌아오니, 이는 곧 우리가 날아오르는 시작이고, 마침내 가히 제후의 뜻을 얻을 것입니다."

 ?子翰言於?曰:「求諸侯莫如勤王,自古有?之君靡不杖此以成事業者也。今連、津跋扈,王師覆敗,蒼生屠膾,豈甚此乎!?子外以龐本?名,內實幸而?寇。封使君以誅本請和,而毒害滋深。遼東傾沒,垂已二周,中原兵亂,州師屢敗,勤王杖義,今其時也。單于宜明九伐之威,救倒懸之命,數連、津之罪,合義兵以誅之。上則興複遼邦,下則??二部,忠義彰於本朝,私利歸於我國,此則吾鴻漸之始也,終可以得志于諸侯。」


 외가 좇았다.

 ?從之。


 이 날로 기병을 이끌고 련과 진을 토벌하여 크게 깨뜨리고 목을 베니, 2부가 다 항복하여 극성에 이주하고, 요동군을 세우고 돌아왔다. 

 是日,率騎討連、津,大敗斬之,二部悉降,徙之棘城,立遼東郡而歸。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삼국유사 권 제1 > 제1 기이(紀異第一) > 김유신(金庾信 : 흥무대왕 김유신) > 백석白石 전

연오랑,세오녀의 정체를 알려주며 백석白石이란 암호도 나오고 '스누가'에 대해서 나오는 일본서기 사료

필사 중) 남사 백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