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 무열왕 편_장춘랑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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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 新羅本紀 第五 > 太宗 武烈王 > 장춘과 파랑이 당나라의 소식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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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과 파랑이 당나라의 소식을 전하다 ( 659년 10월(음) )


冬十月, 王坐朝, 以請兵於唐不報, 憂形於色. 忽有人於王前, 若先臣長春·罷郞者.

言曰, “臣雖枯骨, 猶有報國之心, 昨到大唐, 認得皇帝命大將軍蘇定方等, 領兵以來年五月, 來伐百濟. 以大王勤佇如此, 故玆控告.” 言畢而滅.

王大驚異之, 厚賞兩家子孫, 仍命所司, 創漢山州莊義寺, 以資冥福.


주제분류정치>신이>생물>사람·귀신

정치>행정>관인>政務諫言

문화>사상>불교사상>사원·단월

색인어이름 : 長春, 罷郞, 蘇定方

지명 : 漢山州

국명 : 唐, 大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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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과 파랑이 당나라의 소식을 전하다 ( 659년 10월(음) )


〔6년(659)〕 겨울 10월에 왕이 조정에 앉아 있는데, 당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답이 없어 낯빛에 근심이 서렸다.註 001 〔그런데〕 홀연히 어떤 사람이 왕의 앞에 나타났는데, 마치 옛 신하인 장춘(長春)과 파랑(罷郞)註 002 같았다.

그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신(臣)은 비록 백골[故骨]이 되었으나 아직도 나라에 보답할 마음이 있어서 어제 당나라에 갔었는데, 황제가 대장군(大將軍) 소정방(蘇定方)註 003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내년 5월에 와서 백제를 치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왕께서 이처럼 너무 애타게 기다리시니 이렇게 아뢰옵니다.”라고 하고 말을 끝내자 사라졌다.註 004

왕이 매우 놀랍고 이상하게 여겨서 두 집안의 자손에게 후한 상을 주고, 해당 관청에 명하여 한산주(漢山州)註 005에 장의사(莊義寺)註 006를 세워 〔두 사람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註 001 당나라에 … 근심이 서렸다: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6년(659) 4월조에 당나라로 사신을 보낸 내용이 실려 있다.

註 002 장춘(長春)과 파랑(罷郞):『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2 장춘랑파랑(長春郞罷郞)조에는 파랑은 ‘비랑(羆郞)’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두 사람은 백제와의 황산(黃山) 전투에서 죽었는데, 이후에 신라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략할 때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꿈에 나타나 종군(從軍)하기를 요청하였으며, 후에 왕은 두 혼령을 위하여 모산정(牟山亭)에서 불경을 설하고, 한산주(漢山州)에 장의사(壯義寺)를 세워서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한다. 이 기록에서는 659년 이전에 장춘과 파랑이 죽었다고 하나, 『삼국유사』에는 660년 7월에 벌어진 황산(황산벌) 전투에서 죽었다고 전하여 차이를 보인다.

註 003 소정방(蘇定方): 소정방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2년(655) 3월조 참조.

註 004 대왕께서 이처럼 … 끝내자 사라졌다:『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2 장춘랑파랑(長春郞罷郞)조에는 “처음에 백제군사와 황산(黃山: 황산벌)에서 싸울 때에 장춘랑과 파랑이 진중(陣中)에서 죽었는데, 후에 백제를 토벌할 적에 태종의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신 등은 이전에 나라를 위하여 몸을 버리었고 지금은 백골이 되었으나 나라를 수호하고자 하여 군행(軍行)에 따라 나가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의 위엄에 눌려 남의 뒤만 쫓아다닙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저희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주십시오.’라고 하였다.”라고 전하여 신라본기의 기록과 차이를 보인다. 한편 이 기사는 당나라에 숙위로 가있던 인물이나 당나라의 비공식 사절이 당나라의 백제 정벌 계획을 전한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주보돈, 2018,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 지식산업사, 369~370쪽).

註 005 한산주(漢山州): 신라 지방 행정구역인 주(州)의 하나로, 지금의 경기도, 황해도 일대를 관할하였다. 이곳은 한성기(漢城期) 백제의 왕성이 있던 곳이고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의 침입으로 한성(漢城)이 함락되면서 고구려가 이곳에 한산군(漢山郡)을 설치하였다. 이후 551년에 백제의 성왕(聖王)이 이곳을 회복하였으나 553년에 신라의 진흥왕이 빼앗아서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신주의 주치(州治) 및 정(停)군단의 주둔지는 오늘날 경기도 이천시에 해당하는 남천(南川)이었다. 진흥왕(眞興王) 18년(557)에 주치와 정군단을 지금의 강북 지역에 해당하는 북한산(北漢山)으로 옮겼다. 이것이 본서에는 신주를 폐지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신설한 것처럼 기록되었다. 선덕왕(善德王) 6년(637)에 신주를 분할하여 우수주(牛首州)와 한산주(漢山州)를 설치하였다는 견해가 있다(전덕재, 2001, 「신라 중고기 주(州)의 성격 변화와 군주(軍主)」 『역사와 현실』 40).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는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개칭하고, 1소경(小京), 27군(郡), 46현(縣)을 영속(領屬)케 하였다.

註 006 장의사(莊義寺):『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2 장춘랑파랑(長春郞罷郞)조에는 ‘장의사(壯義寺)’라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 한성부(漢城府) 불우(佛宇)조에는 ‘장의사(藏義寺)’라고 기록되었다.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었으며,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의 세검정초등학교 부근 추정지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신라의 사원 중에 국왕이 죽은 신하의 명복을 위해서 창건한 절은 장의사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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