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2대 정복군주 태종 덕광의 군량미 문제 해결 방법

 거란 2대 정복군주 태종 덕광의 군량미 문제 해결 방법




"거란주가 사방으로 수많은 공헌(貢獻)을 받아들여 마냥 술을 마시고 풍악을 울리며 매번 진나라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중국의 일은 내가 다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일은 너희들이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연수가 상국의 군사들에게 늠식(廩食)을 제공할 것을 청하니, 거란주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법이 없다.”라고 하고, 이에 호기(胡騎)를 사방으로 내보내어 말을 먹인다는 구실로 번을 나누어 약탈을 시키며 이를 일러 ‘타초곡(打草穀)’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장정들은 창칼의 날에 죽고 노약자는 구렁텅이에 버려지니, 동기(東畿)ㆍ서기(西畿) 및 정주(鄭州)ㆍ활주(滑州)ㆍ복주(濮州) 수백 리 사이에 재물과 가축이 다 없어졌다.


거란주가 판삼사 유후(劉喣)에게 말하기를, “거란의 군사가 이미 진나라를 평정하였으니, 넉넉한 상사(賞賜)가 있어야 한다. 속히 대책을 세워 마련하라.”라고 하였다. 이때 부고(府庫)가 텅 비어서 유후가 도성 사민(士民)의 전백(錢帛)을 뒤져내어 빌려 쓸 것을 청하였고 - 도성은 대량(大梁)의 도성이다. - 또 사자 수십 인을 나누어 보내어 여러 주(州)로 가서 빌려 오도록 하였는데, 모두 엄주(嚴誅)로 압박하여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하였다. 실상은 상으로 나누어준 것은 없고 모두 내고(內庫)에 쌓아 두었다가 제 나라로 실어보내려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안팎이 원망하고 분개하며 비로소 거란을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모두가 쫓아낼 생각을 하였다.【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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