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봉사고려도경 의장대 01
선화봉사고려도경 의장대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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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봉사고려도경 > 『선화봉사고려도경』 권11 의장대[仗衞] 1 > 의장대[仗衞]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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仗衞一
仗衞一
臣聞 高麗王城仗衞, 比他郡最盛. 蓋驍勇萃於此. 當中朝使至, 盡出之, 以示榮觀焉. 其制, 民十六以上, 充軍役, 其六軍上衞, 常留官府, 餘軍皆給田受業. 有警則執兵赴敵, 任事則執役服勞, 事已則復歸田畝, 偶合前古鄉民之制. 初高麗在魏世, 户不過三萬, 至唐高宗下平壤, 收其兵乃三十萬, 今視前世, 又增倍矣. 其留衛王城, 常三萬人, 迭分番以守. 制兵之略, 軍有將, 將有領, 隊伍有正, 步列有等, 列爲六軍, 曰龍虎神虎興威金吾千牛控鶴. 分爲兩衞, 曰左衞右衞, 别以三等, 曰超軍猛軍海軍. 無黥墨之制, 無營屯之居. 唯給使於公, 以衣服爲别而已. 鎧甲, 上下連屬, 制如逢掖, 形狀詭異. 金花高帽, 幾及二尺. 錦衣青袍, 緩帶垂胯, 蓋其國人質侏儒, 特加高帽錦采, 以壯其容耳. 今繪圖, 各以名色列之于後.
색인어
이름唐高宗
지명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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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대[仗衞] 1
의장대[仗衞]註 001 1
신(臣)이 듣기에 고려 왕성(王城)의 장위는 다른 군현들[郡]과 비교하면 가장 훌륭하다. 날래고 용맹한 군인들이 여기에 모여 있는 듯하다. 중국[中朝]에서 사신이 오면 모두 나와서 영예로운 광경[榮觀]을 보여준다.
고려 제도에서는 백성들은 16세 이상이면 군역(軍役)에 충당되는데, 6군(六軍)의 상위(上衞)는 항상 관부(官府)에 머무르며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토지를 지급받고 자신의 생업을 부여받는다. 전쟁이 나면[有警] 무기를 들고 적에게 돌진하고, 일을 맡으면 역에 따라[執役] 복무하며, 일이 끝나면 토지로 되돌아가니 우연히도 옛 향민(鄉民)의 제도와 부합한다.註 002
원래 고구려[高麗]는 위진(魏晉)대註 003에는 호(户)가 3만에 불과했는데 당 고종(高宗)이 평양을 함락시킬 때는 거두어들인 병사의 숫자가 30만이었으며, 현재〈의 고려〉를 앞 시대와 비교한다면 다시 두 배로 늘었다. 왕성에 머물러 숙위를 담당하는 숫자가 항상 3만 명인데, 교대로 번(番)을 나누어 지킨다. 병제(兵制)의 대략은 군(軍)에는 장(將)을 두고 장(將)에는 령(領)을 둔다. 대오(隊伍)에는 정(正)이 있으며 보열(步列)에는 등(等)이 있는데 나란히 6군(六軍)이 되니, 용호군(龍虎軍)·신호군(神虎軍)·흥위군(興威軍)·금오군(金吾軍)·천우군(千牛軍)·공학군(控鶴軍)이라 부른다.註 004 〈이를〉 나누어서 양위(兩衞)가 되니 좌위(左衞)·우위(右衞)라고 부르고, 삼등(三等)으로 구분하니 초군(超軍)·맹군(猛軍)·해군(海軍)이라고 부른다.
경묵(黥墨)註 005하는 제도는 없으며 주둔하는 곳[營屯之居]도 없다. 다만 공적으로 사령하는 경우[給使]에는 의복으로 구분할 뿐이다. 갑옷은 위아래가 연결되어 마치 봉액(逢掖)처럼註 006 보이는데 이상한 모습이다. 금꽃으로 장식한 높은 모자는 거의 2자註 007[尺]에 이른다. 비단 옷에 푸른 포(袍)에 느슨한 띠는 느슨하게 매어 바지[袴]까지 내려온다. 아마도 고려인들은 선천적으로 키가 작기 때문에[侏儒] 특별히 높은 모자와 비단으로 장식하여 그 용모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그림을 그리고 명칭[名色]에 따라 뒤에 차례로 서술한다.
註 001 장위(仗衞)는 의장호위(儀仗護衛)를 말한다.
註 002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서문(序文)에는 이와 관련된 표현이 있다.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삼한을 통일하고 처음으로 육위(六衛)를 설치하였다. 각 위는 38영(領)으로 되어 있었고 각 령은 1,000명씩이었다. 상하(上下)가 서로 연결되고 체통(體統)이 서로 이어진 것이 당의 부병제[府衛之制]와 비슷하였다(高麗太祖統一三韓, 始置六衛, 衛有三十八領, 領各千人, 上下相維, 體統相屬, 庶幾乎唐府衛之制矣. : 『高麗史』 卷81 志35 兵1).” 여기에 본문의 내용과 토지 지급에 관한 『고려사(高麗史)』 식화지(食貨志) 서문(序文)을 고려하면, 고려에서는 16세부터 토지를 지급받고 군역을 비롯한 각종 역을 부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고려 군대의 편성원리가 이같은 부병제가 아니라 군반씨족(軍班氏族)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연구도 있다.
註 003 징강본에는 ‘魏世’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고전서본에는 ‘魏晉’이라 되어 있고, 지부족재본에서는 ‘魏世鄭刻晉’이라 되어 있다. 사고전서본을 따라 ‘위진(魏晉)’으로 국역하였다.
註 004 본문에 따르면 고려의 6위(衞)[6군(軍)]는 용호군(龍虎軍)·신호군(神虎軍)·흥위군(興威軍)·금오군(金吾軍)·천우군(千牛軍)·공학군(控鶴軍)이다. 하지만 실제로 고려의 중앙군 조직인 6위(衞)는 좌우위(左右衛)·신호위(神虎衛)·흥위위(興威衛)·금오위(金吾衛)·천우위(千牛衛)·감문위(監門衛)였다(李基白, 1968, 『高麗兵制史硏究』, 일조각, 69쪽).
註 005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의미한다.
註 006 봉액(逢掖)은 소매가 큰 옷을 말한다. 봉(逢)은 크다[大]는 뜻이며 액(掖)은 액(腋)으로서 겨드랑이 부분이 크게 되어 있는 의복을 말한다.
註 007 사고전서본에는 ‘三’이라고 되어있고, 지부족재본에는 ‘二鄭刻三’이라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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